변하는 시대, 변하지 않는 것


옛날에 대우받던 사람을 떠올려 보자. 왕과 귀족, 장군, 책사. 그리고 농민.

농민은 그 셋과 함께 묶이지 않는다. 분명 모두가 같은 땅 위에 살았는데, 한쪽은 대대로 떵떵거렸고 한쪽은 대대로 굶었다. 왜 그랬을까.

흔히 신분제 때문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신분제는 한번 정해진 자리를 대물림으로 잠그는 자물쇠일 뿐, 그 자리를 처음 정한 이유는 아니다. 신분이 갈리기 전에도 누군가는 위에, 누군가는 아래에 있었다. 그러니 한 겹 더 들어가야 한다. 무엇이 그 자리를 정했나.

흔한 대답은 “땅 가진 사람이 위”라는 것이다. 절반은 맞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상하다. 농민도 땅 위에서 산다. 아니, 흙을 직접 만지고 씨를 뿌리며 땅에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건 오히려 농민이다. 그런데 가장 가난했다.

그러니 대우를 가른 건 땅과의 거리가 아니었다. 땅에 대한 권리와의 거리였다. 흙에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 토지권에 가까운 사람 — 기사, 귀족, 왕 — 이 대우받았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흙에 가장 가까운 농민과 권리에 가까운 왕
흙에 가장 가까이 붙어 일한 사람이, 가장 가난했다. 대우를 가른 건 거리가 아니라 권리였다.

땅의 시대

당시 부의 원천, 즉 생산수단은 토지였다. 같은 토지를 두고 네 부류가 각자 다른 거리에서 그것과 관계를 맺었다.

  • 왕·귀족은 토지를 소유했다. 권리 그 자체를 쥔 사람들.
  • 장군은 토지를 확장했다. 정복으로 판 자체를 키웠다.
  • 책사는 토지의 산출을 키웠다. 세제와 통치를 설계해, 같은 땅에서 더 많이 거두게 만들었다.
  • 농민은 토지를 운용했다. 몸으로 일했다.
토지를 둘러싼 네 자리: 소유·확장·증폭은 위, 운용은 아래
같은 토지, 네 개의 자리. 위의 셋은 권리를 쥐었고 — 아래 하나는 만지기만 했다.

앞의 셋에겐 공통점이 있다. 자기 한 사람의 결정이 땅 전체에, 그 위 모든 농민의 노동 위로 곱해졌다. 권리란 결국 그런 것이다 — 남의 노동과 자원을 움직이는 지렛대. 농민에겐 그 지렛대가 없었다. 아무리 부지런해도 산출은 제 몸 하나에 묶였고, 옆 사람으로 바꿔 끼워도 표가 안 났다. 가장 가까이서, 가장 열심히 일했지만 — 대체 가능했고, 곱해지지 않았다.

지렛대: 한 사람의 결정이 만인의 노동을 들어올린다
권리란 지렛대다. 한 사람의 결정이 만인의 노동 위로 곱해진다. 농민에겐 그 지렛대가 없었다.

그러니 대우는 생산수단을 만진 사람이 아니라, 그 위에 권리를 쥔 사람에게 갔다. 이 구조가 시대마다 어떻게 되풀이됐는지 보자.

기계의 시대

산업혁명이 왔다. 부의 원천이 토지에서 자본과 기계, 공장으로 옮겨갔다. 생산수단의 정체가 바뀐 것이다.

그런데 그 위에 앉은 사람들의 배치는 똑같았다.

  • 소유 — 공장과 자본을 가진 자본가. 그리고 그 위에서 돈 자체를 굴린 금융가. 로스차일드 가문이 대표적이다.
  • 확장 — 식민지 개척가와 무역상이 시장과 원료의 판을 넓혔다. 옛 장군의 자리다.
  • 증폭 — 기계를 개발한 엔지니어가 같은 노동에서 더 많은 산출을 뽑아냈다. 옛 책사의 자리다.
  • 운용 — 공장 노동자가 기계를 만졌다. 옛 농민의 자리다.

여기서도 기계에 손을 직접 댄 건 노동자다. 가장 가까웠다. 하지만 컨베이어 위의 톱니였다. 누구로 바꿔도 돌아갔고, 산출은 제 손의 속도에 묶였다. 기계를 만질 뿐, 자본을 쥐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 시대의 권리는 토지가 아니라 돈이었다. 그래서 흙도 기계도 만지지 않는 사람들 — 돈과 채권에 가장 가까이 앉은 금융가 — 이 새로운 귀족이 됐다. 쥔 자가 누리고 만진 자가 굶는 구조는 그대로 둔 채, 권리의 정체만 토지에서 돈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기계를 만지는 노동자, 그 가치는 돈을 쥔 금융가에게로 흐른다
기계를 만진 건 노동자. 그러나 가치가 흘러가 쌓인 곳은, 돈을 쥔 금융가였다.

네트워크의 시대

인터넷이 왔다. 부의 원천이 다시 옮겨갔다. 이번엔 네트워크와 플랫폼, 코드와 데이터다. 공장이 없어도, 땅이 없어도 거대한 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배치는 또 똑같았다.

  • 소유 — 플랫폼을 가진 창업자, 그리고 그 지분을 산 투자자.
  • 확장 — 영업과 마케팅이 사용자와 시장을 끌어모았다. 옛 장군의 자리다.
  • 증폭 — 플랫폼을 개발하고 기획한 사람들이 코드 한 줄을 수억 명에게 곱했다. 옛 책사의 자리다.
  • 운용 — 사용자가 그 위에서 콘텐츠와 데이터를 만들어 올렸다. 옛 농민의 자리다.

여기서 반전이 선명해진다. 플랫폼에 가장 가까이, 가장 부지런히 일한 사람은 사용자다. 매일 글을 쓰고, 영상을 올리고, 검색하고, 클릭한다. 콘텐츠도 데이터도 사용자가 공짜로 만들어 바친다. 화면에 가장 가깝기로 따지면 압도적 1등이다. 그런데 그 노동이 곱해져 쌓이는 곳은, 화면이 아니라 지분을 쥔 사람의 계정이다.

사용자들이 만든 콘텐츠가 플랫폼 소유자의 금고로 흘러 쌓인다
화면에 가장 가까이 일한 건 사용자. 곱해져 쌓인 곳은 지분을 쥔 사람의 계정이었다.

땅을 만지던 농민이, 이제 화면을 만지는 사용자가 되었을 뿐이다. 가장 가깝고, 가장 열심이고, 가장 대체 가능한 자리. 그 자리는 천 년 동안 이름만 갈아입었다.

농민에서 노동자, 사용자로 — 맨 아래 자리는 이름만 바뀌었다
농민에서 노동자, 사용자로. 맨 아래 자리는 천 년 동안 이름만 갈아입었다.

지능의 시대

이제 AI다. 부의 원천이 한 번 더 옮겨가는 중이다. 토지도, 기계도, 플랫폼도 아니다. 이번 생산수단은 지능 그 자체 — 모델과 연산력, 그리고 그것을 먹인 데이터다.

배치를 맞춰 보면, 또 그대로다.

  • 소유 — 모델과 연산 인프라, 데이터를 가진 소수가 맨 위에 있다.
  • 확장 — 그 지능을 산업마다, 시장마다 끼워 넣는 사람들이 판을 넓힌다. 옛 장군의 자리다.
  • 증폭 — AI 위에 자기 시스템과 제품을 얹는 사람이 산출을 키운다. 모델 하나를 빌려 수만 명의 일을 대신 처리하게 만든다. 옛 책사의 자리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다.

토지는 정복하지 않으면 못 가졌다. 공장은 자본이 없으면 못 세웠다. 플랫폼은 아무나 만들지 못했다. 역사상 생산수단은 늘 비쌌고, 소유자는 늘 소수였다. 그래서 대부분은 운용하는 자리, 곧 농민의 자리밖에 고를 수 없었다.

지능은 다르다. 소유의 자리는 여전히 소수의 것이다. 모델을 처음부터 짓는 일은 천문학적이니까. 하지만 그 위에 얹는 자리는, 사상 처음으로 아무에게나 열렸다. 모델은 빌리면 된다. 그 위에 시스템을 올리는 일은, 땅을 정복하거나 공장을 세우는 일에 비하면 거의 공짜에 가깝다. 다시 말해, 책사의 자리와 장군의 자리가 — 역사상 처음으로 — 손에 닿는 높이로 내려왔다.

모델 소유는 소수의 것이지만, 그 위에 얹는 자리는 누구에게나 열렸다
모델을 소유하는 자리는 여전히 소수의 것. 하지만 그 위에 얹는 자리는, 처음으로 누구에게나 열렸다.

그래서 질문이 뒤집힌다. 예전에는 “왜 농민은 그 자리에서 못 벗어났나”였다. 거의 못 벗어나는 게 당연했으니까. 지금은 “왜 굳이 그 자리를 고르나”다. 올라설 사다리가 처음으로 눈앞에 내려와 있는데, 많은 이들이 여전히 더 빨리, 더 가까이, 더 열심히 손만 움직이는 쪽을 택한다.

늘 닿지 않던 사다리의 아랫단이 처음으로 땅까지 내려왔다
늘 닿지 않던 사다리의 아랫단이, 처음으로 땅까지 내려왔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올라서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것

시대마다 생산수단의 정체는 계속 바뀌었다. 토지에서 자본으로, 자본에서 네트워크로, 네트워크에서 지능으로. 그에 대한 권리의 이름도 바뀌었다. 토지권에서 돈으로, 돈에서 지분으로.

토지·자본·네트워크·지능으로 생산수단은 바뀌어도 구조는 그대로다
토지에서 지능까지 도구는 바뀌었다. 쥔 자가 위, 만진 자가 아래인 구조는 그대로다.

바뀌지 않은 것은 그 위의 구조다. 보상은 그것을 가장 가까이서 만진 사람이 아니라, 그 위에 권리를 쥔 사람에게 갔다 — 소유하거나, 확장하거나, 증폭한 사람에게. 그리고 가장 대체되기 쉬운 자리는 언제나, 산출이 제 몸 하나에 묶인 사람의 것이었다.

이게 본질이다. 도구가 무엇이냐는 매번 바뀌지만, 누가 대우받느냐의 원리는 바뀐 적이 없다.

달라진 건 딱 하나다. 권리를 쥐는 자리가, 처음으로 우리 손이 닿는 높이로 내려왔다는 것.

거기에 앉을지는, 당신 몫이다.